그리스도적 실정주의實定主義Positivismus

그리스도 신앙이란 인간세계와 시간 밖에서 차원을 전혀 달리하는 존재로서 있는 영원한 것만을 단순히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신앙이란 오히려 역사 '안의' 신을, 인간으로서의 신을 대상으로 한다. 신앙은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신을 인간으로서, 영원자를 우리 중의 하나로서 대면시켜 줌으로써 영원과 시간, 가시와 불가시 세계를 연결해 주는 것으로 나타나기에 계시啓示로 성립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신앙이 계시라고 자부하는 것은 이를테면 영원을 우리 세상 안으로 끌어들여 왔다는 데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일찍이 아무도 못 본 것을 - 아버지 품 안에 계신 분이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요 1,18). 그리스 원전을 빌려 말하자면, 예수 자신이 우리에게 신의 '풀이'exegesis가 되어 주었다고 하겠다[exegesis: ex(~에서) + hègesthai(이끌어 내다)에서, 즉 풀이해 주다]. 독일어 낱말을 보더라도 원전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있다. 예수는 하느님으로 참으로 풀이해 주고[aus-gelegt = 펴놓다, 해설하다] 신을 그 자신에서 이끌어 내었다[herausgeführt aus sich selbst]. 또한 요한의 첫째 서간이 더 노골적으로 말하듯이 우리가 하느님을 보고 만질 수 있게 해 주어 일찍이 아무도 보지 못한 자가 우리의 역사적 감촉의 대상이 되게 하였다. 언뜻 보기에 이것이야말로 계시의 극치, 신의 발로의 극치인 듯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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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신을 우리와 같은 한 인간으로 감촉하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재어 보기까지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가까이해 주는 바로 그것이, 동시에 역사의 향방과 인간의 대신對神 관계를 돌이킬 수 없이 깊이 규정지은 '신의 죽음'의 전제가 되어 준다. 즉, 신은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워진 나머지 우리는 그를 죽일 수 있었고, 때문에 우리에게 더는 신이 되저 주지 못하는 것같이 보인다.

+요셉 라칭어Joseph Ratzinger,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Einführung in das Christentum, 분도출판사, 13.

  1. 1요한 1,1-3

Posted by kimswork

2008/04/15 21:28 2008/04/15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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