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라이어마허 기독교신앙: 10월26일 강의
- Posted at 2009/10/2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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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의 상태의 평가: 일정한 고정된 감정(아는 것, 느끼는 것, 행동하는 것의 결합)
경건의 본질과 자기의식의 두 요소(자기의식의 이중성)
a. 자신을 설정함(주체의 존재 자체) - 수용성
b. 자신을 그렇지 않게 설정함(주체가 다른 것과 함께 있는 것) - 활동성
"수용성과 활동성의 합이 세계이다. 즉 자신이 받아들인 것의 총화가 세계이다."
"순전한 다른 감정만으로 세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자유와 의존은 동등 무게를 가진다. 그런데 자신을 더 의존적이라 느낄때 그것이 신의식(혹은 신)이다."
"주체 자체만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기의식이 될 수 없다"
: 자기의식은 수용성과 자기 활동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기의식의 본질: 우리가 의존적이라고 느끼는 것
경건의 본질과 자기의식의 두 요소(자기의식의 이중성)
a. 자신을 설정함(주체의 존재 자체) - 수용성
b. 자신을 그렇지 않게 설정함(주체가 다른 것과 함께 있는 것) - 활동성
"수용성과 활동성의 합이 세계이다. 즉 자신이 받아들인 것의 총화가 세계이다."
"순전한 다른 감정만으로 세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자유와 의존은 동등 무게를 가진다. 그런데 자신을 더 의존적이라 느낄때 그것이 신의식(혹은 신)이다."
"주체 자체만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기의식이 될 수 없다"
: 자기의식은 수용성과 자기 활동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기의식의 본질: 우리가 의존적이라고 느끼는 것
나는 감정을 직접적 자기의식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감정이 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로 시간의 한 부분을 채우며, 본질적으로는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약하게 쾌와 불쾌의 대립된 형태 가운데 나타나는 바와 같다. 그러나 경건이 감정의 어떤 방향과 규정인지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입증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그 누구에게도 감정은 종교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니는 새로운 신론神論의 주장에 관계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주장하는 것은 감정이 경건의 자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이 항상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경험에 반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든 이에게 어떤 식으로든지 규정된 자기의식 아래에서는 모든 사고와 의지가 뒤로 물러나는 순간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요구한다.
경건으로부터 지식이나 행위가 경건의 표현이나 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은 경건 자체라는 말 가운데 이미 들어 있다. 경건은 지식이나 행위에서 인식될 수 있지만, 경건 자체는 그 시원과 본래적인 본질에서 지식과 행위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Posted by kims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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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r christliche Glaube, Schleiermacher, 기독교 신앙, 서철원, 슐라이어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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