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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swork

2009/07/25 17:18 2009/07/2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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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 Iosue 1:3


Liber Iosue 1:3
omnem locum quem calcaverit vestigium pedis vestri vobis tradam sicut locutus sum Mosi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VisionCamp 111. 2009.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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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2 20:40 2009/07/2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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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와 선행

그러므로 그분(하나님)은 우리들의 밖에서 활동하셔서 우리의 의지가 움직이게 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의지하게 되고 의지대로 움직이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와 협동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않으면 경건한 선행도 할 수 없으며, 우리의 의지가 움직인다거나 아니면 우리의 의지가 움직일 때 하나님이 협동하게 하실 수도 없게 된다.

+Augustinus, 은총과 자유의지에 관하여De grat. et lib. arb.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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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5 17:23 2009/07/1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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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지식

*scientia      단순한 "앎", 감각적이고 소멸적인 지식

*sapientia    "지혜", 영원하고 불가변적 실재에 대한 지식

Posted by kimswork

2009/07/15 12:50 2009/07/1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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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의 의무

다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역사가의 첫번째 의무는 신실성fidelity공평justice이다. 그는 역사 그 자체를 재생산하여야 하며, 자신의 재생산 속에서 다시금 살아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의 지고至高의 그리고 유일한 목적은 증인과 마찬가지로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온전한 진리, 오직 진리만을 말해야 하며, 재판관처럼, 자신의 법원에 나아오는 모든 사람들과 사건들을 오로지 공정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처럼 신실하고 공정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자격 요건이 필요한 바, 그것은 학문적sicentific, 예술적artistic, 그리고 종교적religious 요건이다.

1. 역사가는 먼저 자료들을 다스릴 수 있는 대가大家여야 한다.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기 위해서는 그는 먼저 교회 언어학(특별히 대부분의 초기 문헌들의 씌여진 헬라어와 라틴어), 세속 역사, 지리학, 그리고 연대기와 같은 보조적 학문들에 정통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서는 이러한 자료들을 이용함에 있어서 그는 철저하게 그리고 불편부당하게 이것들의 진정성, 온정성, 신뢰성과 증언의 능력 정도를 따져 보아야 한다. 오직 그렇게 해서만 그는 허구와 사실, 오류와 진리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 역사의 자료들은 너무나 방대하고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짧은 생애 동안 이 모든 것들을 읽고 소화해 낸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역사가는 그 전 역사가들의 어깨 위에 올라 앉아 있다. 역사가는 가장 양심적인 탐구 후에조차도 어떤 것들은 신뢰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자신이 일차 자료들을 자세하게 연구할 수 없는 경우에는, 문헌 수집물들, 요약된 자료들, 풍부한 색인들, 철저한 논문들을 이용해야 한다. 그러한 사람만이 항상 자신의 전거典據들을 주의깊게 제시할 수 있고, 사실들과 날짜들과 인용문들을 확증할 수 있다. 정확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은 역사학적 저술로서는 그 평판이 치명적인 것이다.

2. 그 다음으로는 작문composition이 따른다. 이것은 예술이다. 그것은 사건들을 단지 자세하게 열거하는 것이어서는 안 되며, 살아있는 과정 속에 있는 교회의 발전을 재생산해 내야 한다. 역사는 뼈다귀들의 집합이 아니라, 이성적 영혼에 의해 채워지고 지배되는 유기체인 까닭이다.

여기서 가장 어려운들 중의 하나는 자료들의 배열에 관한 것이다. 최선의 방법은 연대기적인 구분 원리와 주제별 구분 원리를 현명하게 결합시키는 것이다. 연속적인 사건들과 또한 이와 더불어 여러 병행적인(그리고 실제에 있어서는 서로 얽혀 있는) 역사의 분야들을 적절한 비율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전체 역사를 시대별로 구분하되, 자의적으로가 아니라 사건들의 실제적 과정에 의해 결정되는 방식으로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나면 각 시대들을 다시 자료들 자체가 요구하는 만큼의 병행적 시기들과 중요 사건들로 세분하여 제시하여야 한다. 한 시대를 어느 정도의 시기들로 세분해아 하는가, 또는 중요 사건들을 어떻게 배열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실상 상충되는 의견들이 존재하며, 우리의 원리를 적용하자면, 전체 역사의 제시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단지 완전을 향해 접근할 수만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제시한 원리 그 자체는 참된 것이다.

고대의 고전적 역사가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의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주제를 일련의 책들이나 장章들 안에서 주제별 구분 없이 하나의 동절적인 형식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방법은 역사의 모든 시점에 있어서 그 살아있는 통일성과 다양성을 더 잘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연필이나 끌과 달리 언어는 단지 시간적 연속성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며, 공간정 병발성炳發性은 보여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을 융통성 없이 추구하게 되면, 결코 어떤 하나의 주제나 교리, 예배,또는 실제적 삶의 완전한 모습을 얻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끊임없이 다양한 주제들을 뒤섞고, 다른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기존의 주제들로부터 이탈해야만 한다. 주제를 바꾸는 것이 다할 때까지, 심지어는 아주 갑작스런 주제 전환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독일식의 연대기적이면서도 주제별 배열 방식은 학생들에게 시간의 순서는 물론 주제의 순서를 제시해 주는 데도 커다란 실제적 유익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마그데부르르 세기史 Magdeburg Centuries>나 많은 연후의 저술들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역사를 획일적이고 단조로운 곡조로 만들어 버려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역사는 주제나 시간에 있어서 물론 순서를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생명이 그러한 것처럼, 다양성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의 시대는 중세기와는 상당히 다른 자료 배열을 요구한다. 그리고 근대사에 있어서는 주제별 구분이 신앙고백들과 국가들의 구분과 결합되고 또 이러한 구분에 종속되어야 한다. 독일, 프랑스, 영국, 그리고 미국의 로마 가톨릭, 루터파, 개혁파 교회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렇다면 역사가는 역사의 통일성과 다양성 모두를 다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역사가는 서로 다른 주제들의 유기적 연관성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각각의 주제들을 그 독립된 완전성 속에서 제시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틀은 자의적으로 만들어져서는 안 되며, 프로크루테스의 침대Procrusterean framwork처럼(폭력으로 규준에 맞추는), 역사에 현학적으로 적용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도리어 이러한 틀은 역사 그 자체로부터 도출되어야 하며, 사실들의 요구에 의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자료들의 배열보다 훨씬 더 큰 또 다른 어려움은 간결성과 상세함의 결합 문제이다. 일반적인 교회사는 그 모든 분야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왕국의 진보를 온전하게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자료는 너무나 방대하고 끊임없이 증대하고 있어서, 실제의 역사의 본류를 형성하는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현명한 취사선택에 의해 최고도의 응축 방법이 연구되어야 한다. 읽히지 않는다면 책을 쓴다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글허지만 이 바쁜 시대에 누가 바로니우스와 그의 후계자들이 쓴 2절판으로 된 40권짜리 책이나, 플라키우스가 쓴 2절판 13권짜리 책, 또는 쉬렉크Schroech의 8절판 45권짜리 책을 읽으면서 녹초가 될 정도로 시간이 있겠는가?

교회사를 공부하는 학생은 축소형 사진만이 아니라, 등신대等身大의 초상화를 원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과정들이나 비본절적인 세세한 것들은 생략해 버림으로써 많은 공간을 절약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단행본이나 특별한 논문들에 맡겨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간결성이란 역사가에 있어서는 미덕이다. 그것이 역사가를 불명료하고 불가해하게 만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가는 자신의 저술이 읽히도록, 또한 진실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흥미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역사의 어떤 부분들은 무미건조하고 지루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자면, 역사의 진실은 "소설보다 기묘하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서사시이다. 그것은 미화美化가 필요하지 않다. 역사는 우리가 진지하고 활력있고 신선하게 말한다면, 스스로 입을 여는 법이다. 유감스럽게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교회사가들은 문체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위대한 세속 사가들에게 뒤져 있다. 대부분의 교회사가들이 과거를 흥미가 넘치는 살아있고 움직이는 힘으로가 아니라 죽은 시체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사는 전문적인 집단 바깥에서는 거의 읽히지 않는다.

3. 학문적 탐구와 예술적 제시 양자는 모두 건전하고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다시 말하면 참된 기독교 정신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 세속 사가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 공감으로 채워져야 하지만, 교회사가는 보편적인 기독교적 공감으로 채워져야 하는 것이다. 전자의 신조가 "Homo sum, nihil humani a me alienum puto"(나는 인간이다. 인간에 관한 어떤 것도 나에게는 낯설지 않다)라면, 후자의 신조는  "Christianus sum, nihil Christiani a me alienum puto"(나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에 관한 어떤 것도 나에게는 낯설지 않다)이다.

역사가는 먼저 모든 편견과 당파적 열심을 제쳐두고, 오직 진리를 향한 순수한 사랑 안에서 나아가야 한다. 그가 백지tabula rasa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 어떤 사람도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교육적 영향들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고, 또 그렇게 시도해서도 안 된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교회의 역사가들은 모든 일에서 객관적 사실에 가능한 한 "분노나 당파심 없이sine ira et studio" 진실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과 사건들을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교회사가는 기독교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 그곳으로부터 그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모든 개개의 사람들과 사건들을, 모든 신앙고백들과 교파들과 종파들을, 서로에 대한 또한 영광스러운 전체와의 참된 관계 속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보편적 진리의 유명한 삼중의 시금석 - 시간의semper, 장소의ubique, 그리고 수의ab omnibus 보편성 - 은 문자적 의미로 본다면 실제로는 진실이 아니며 또한 적용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공통의 인간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교회에는 공통의 기독교가 존재한다. 기독교인이라면 그것을 무시해 버렸을 때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는 불협화음을 내는 모든 인간적인 신조들과 종파들의 신적인 조화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각양각색의 인상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추적하는 것, 그리고 그의 왕국의 서로 다른 부분들 사이에서 조정자가 역할을 하는 것은 교회사가의 의무이자 특권인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사가는 자신의 주제에 철저하게 공감하고 있어야 하고, 열정적으로 그 주제에 몰두해야만 한다. 시적인 감성과 심미안 없이는 어떤 사람도 시를 해석할 수 없는 것처럼, 또는 철학자가 사변적인 재능 없이는 철학을 할 수 없는 것처럼, 그 어떤 사람도 기독교적 정신 없이는 기독교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고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 없는 사람은 단지 반발심어린 풍자화나, 또는 기껏해야 생명이 없는 조각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뿐이다. 교회사가가 기독교의 토대 위에 더 높게 서 있으면 서 있을수록, 그의 시야는 그만큼 더 넓어지며, 아래의 한 지역 한 지역에 대해 더 완전하고 명확한 상을 얻을 수 있으며, 또한 그것들의 상호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는 오류까지도 진리의 관점으로부터 공정하게 보여질 수 있는 것이다. "진리는 진리와 허위의 시금석이다Verbum est index sui et falsi". 기독교는 스스로 드러내면서 모든 어두운 것들을 밝게 비추는 태양과 같은 절대적 진리이다. 성경과 마찬가지로 교회사는 그 자체의 가장 좋은 해석자이다.

역사가가 이 세가지 요건들을 결합시킨다면, 그는 자신의 직무를 완수하는 것이다.물론 이 지상에서의 삶에서 우리는 학문의 이런저런 분야들에 있어서 단지 먼 거리를 두고 완전에 접근해 갈 수 있을 뿐이다. 완전한 성공은 오류불가능성infallibility을 요구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들은 필멸적mortal 존재인 인간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를 관통하여 보고, 사건들을 그 모든 측면들과 그 모든 관계들 속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신적 정신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 반면에 인간의 정신은 사물들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서 볼 수밖에 없으며, 또한 그것들을 부분적으로나 단편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

역사의 신비에 대한 완전한 해결은 우리가 더 이상 어두운 안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게 될, 그리고 영원의 고지로부터 시간의 발전을 바라보게 될 천상의 상태에 도달할 때를 위해 보류해 두어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구약과 신약의 상호 관계에 대해 매우 적절하게 표현한 "신약은 구약 속에 숨어 있고latet, 구약은 신약 속에 드러나 있다patet"는 말이 지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또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전투적 교회의 역사는 바로 하늘의 승리하는 하나님의 왕국의 모형이요, 예언인 바, 이 예언은 그 성취의 빛으로부터만 완전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필립 샤프Philip Schaff, 교회사 전집1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1 사도적 기독교,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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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8 19:14 2009/07/08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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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나는 종종 인간 속에서 인간을 인식할 수 없다.

28.2  나의 철학하는 방식은 나 자신에게는 여전히, 그리고 계속해서, 새롭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는 그처럼 자주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 새로운 세대에게는 그 방식이 피와 살로 바뀌어 있을 것이며, 그들은 그 반복을 지루하게 느낄 것이다. 낭게 있어서는 그 방식은 필연적이다. - 이 방법은 본질적으로, 진리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뜻에 대한 물음으로의 이행이다.

28.2  내가 나 자신을(어떤 것에 의해) 영향 받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29.2  새로운 낱말은 논의의 대지에 뿌려진 신선한 씨앗과 같다.

32.2  이전의 문화는 폐허로, 그리고 마침내 잿더미로 되겠지만, 그러나 정신들은 그 재 위에서 떠돌 것이다.

+L. Wittgenstein비트겐슈타인, 문화와 가치Vermischte Bemerkungen, 이영철 역,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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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8 19:09 2009/07/08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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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7.8(WED)-Book*

1. 신의 베스트셀러, 브라이언 모이너핸, 김영우 역, 민음in(2007.2.27).

2. 신은 위대하지 않다. 크리스토퍼 히친스, 김승욱 역, 알마(2008.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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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8 18:22 2009/07/0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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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Pensees 읽기 2008.7.2

A. 머리말

2-(274)
우리의 모든 이성적 사고는 결국 감정에 굴복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그런데 환상은 감정과 유사하면서도 반대되는 것이어서 사람들은 상반되는 이 둘을 구별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 감정을 환상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자기의 환상을 감정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기준이 있어야만 한다. 이성이 기준으로 자처하지만 이성은 어느 방향으로나 휘어진다. 그래서 기준이 없다.
이성에 대한 불신

6-(10)
일반적으로 사람은 타인의 머릿속에서 생겨난 이유보다 자신이 발견한 이유에 의해 더 잘 납득한다.

7-(252)
...왜냐하면 자신을 잘못 알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정신이면서 또 그만큼 자동 기계다. 그러므로 설득에 사용되는 수단은 증명만이 아니다. 증명된 사물이란 얼마나 적은가! 증명은 오직 이성만을 설득한다. 습관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신뢰받는 증명을 이룬다. 습관은 자동 기계를 기울게 하고 자동 기계는 무의식중에 정신을 이끌어간다. 내일 해가 뜨고 또 우리는 죽을 것이라고 그 누가 증명하였는가. 그런데 이보다 더 확실히 믿는 것이 어디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를 그렇게 믿게 하는 것은 습관이다. 수많은 기독교도를 만드는 것도 습관이고 터키인, 이교도, 직업, 군인 등을 만드는 것도 습관이다. 결국, 정신이 일단 어디에 진리가 있는지를 본 다음에는 습관에 의지함으로써 시시각각 우리에게 빠져나가려는 이 확신 속에 흠뻑 빠져들고 물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증명을 항상 머릿속에 간직한다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더 쉬운 믿음, 즉 습관의 믿음을 획득해야 한다. 습관은 억지도 기교도 없이 사물을 믿게 하고 우리의 모든 기능을 이 믿음으로 기울게 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그 속에 빠져들어 간다. 오직 확신의 힘만으로 믿을 때 자동 기계가 그 반대의 것을 믿게 되면 확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의 두 부분을 믿게 해야 한다. 즉, 일생에 단 한번 보기만 하면 되는 이유에 의해 정신을, 그리고 습관에 의해 자동 기계를 믿게 하되 이것이 반대의 것으로 기울지 않도록 해야 한다. Inclina cor meum Deus.1
   이성의 움직임은 완만하고 수많은 관점에서, 그리고 수많은 원리 위에서 이루어진다. 이 원리들은 항상 눈앞에 현존해야 하는데 이성은 이 모든 것을 간직할 수 없으므로 으레 몽롱해지거나 갈팡질팡한다. 감정은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감정은 순식간에 발동하고 늘 움직일 태세가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은 감정 안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비틀거릴 것이다.
이성에 대한 극렬한 반대를 드러냄. 정신에 의해 획득된 진리를 파악하고 그것을 습관화하기 위한 과정에서 작용하는 이성의 기능은 완전히 배제하는 한편 즉각적 움직임을 드러내는 감정 안에 믿음을 터해야 함.


B. 서론

10-(197)  
관심을 가져야 할 일들을 무시해 버릴 만큼 무감각하다는 것, 우리와 가장 관련이 깊은 문제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
믿음을 상실하거나 혹은 믿음을 전혀 소유하지 않았거나.

11-(194) P10.1
그러므로 이 회의(懷疑) 안에 있는 것은 정녕 커다란 불행이다. 그러나 이 회의 안에 있을 때 추구하는 것은 적어도 필수적인 의무2다. 이렇듯 회의하면서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몹시 불행하고 또 몹시 불의하다.
이성으로써 종교를 부정하고 신에게서 인간의 궁극적 목적인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의 불행.

11-(194)
P20.3   만약 마음속 깊은 곳에 더 많은 빛을 갖지 않은 것 때문에 괴로워한다면 이것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공언하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수치는 단지 빛을 전혀 갖지 않은 데 있다. ......기독교도가 될 수 없다면 최소한 성실한 인간이라도 되라. 그리고 이치에 합당하다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다음 두 종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라. 신을 알기에 마음을 다하여 신을 공경하는 사람들과, 신을 모르기에 마음을 다하여 신을 찾는 사람들.

14-(560)
우리는 아담의 영광의 상태도, 그의 죄의 본질도, 그 죄가 우리 안에 전해져 내려온 전승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본성의 상태에서 일어났던 일이고 또 현재의 우리 능력의 상태를 넘어서는 일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그것을 안다 해도 그것에서 벗어나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우리가 비참하고 타락하였고 신에게서 떠났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담의 범죄와 그 결과로 인한 죄의 유전을 탐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타락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하였다는 것이다.
  
17-(556)
P5   기독교는 두 진리를 다 함께 가르친다. 즉, 인간이 결합될 수 있는 신이 있다는 것과, 그러나 인간의 본성 가운데 이에 합당하지 않게 만드는 타락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둘 다 아는 것은 똑같이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비참을 모르고 신을 아는 것이나, 이 비참에서 인간을 구하는 구속자를 모르고 자신의 비참을 아는 것은 똑같이 위험하다. 그중 하나만을 알면 신은 알되 자신의 비참을 모르는 철학자의 오만에 떨어지거나, 구속자 없이 자신의 비참을 아는 무신론자의 절망에 빠진다.
P8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비참을 모르고도 신을 알 수 있고 신을 모르고도 자신의 비참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과 자신의 비참을 동시에 알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다.

22-(193)
Quid fiet hominibus qui minima contemnunt, majora non credunt?3

24-(596)
누가 마호메트를 증언하는가. 마호메트 자신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증언이 아무것도 아니기를 바란다.4

30-(248)
신앙은 증거와는 다르다.  증거는 인간적인 것이고 신앙은 신의 선물이다. Justus ex fide vivit. 신이 인간의 마음속에 넣어주는 것은 믿음이고 증거는 흔히 수단이다. Fides ex auditu. 그러나 믿음은 마음속에 있으며 scio가 아니라 credo라고 말하게 된다.

  1. "내 마음을 기울게 하소서 주여" 시편 119:36.
  2. 파스칼에게 제1의 관심과 제1의 의무는 사람의 모든 행위가 결부되어 있는 긍국의 목적, 즉 영원한 행복을 밝히는 일이다.
  3. 가장 작은 일들은 경시하고 가장 큰 일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4. 요5:31,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며 si ego testimonium perhibeo de me testimonium meum non est verum

Posted by kimswork

2009/07/02 18:08 2009/07/0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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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 "내가 너를 이해한다"라고 말하는 그 순간이 바로 "오해"의 시작이다.

misunderstood
                                                                                                                         
                                                                                  photo by emy_jane

Posted by kimswork

2009/07/02 16:02 2009/07/0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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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ige, et quod vis fac

Tractatus I(1Joannes, 1:2-11)
Per fidem Verbum carni coniunctum contigere possumus et ab illius lumine illuminari et vitam habere, si peccata nostra humiliter confiteamur et caritatem fraternam teneamus.
:만약 우리 죄를 겸손되이 고백하고 형제적 사랑을 지켜 나간다면, 믿음을 통하여 육신을 취하신 말씀이신 그리스도에게 도달할 수 있으며, 그 빛으로 조명되고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i. Manifestata est ipsa vita in carna.
   :생명 자체이신 분이 육(신) 안에 드러내 보여졌습니다.

   ii. In illo utero virginali coniuncti sunt sponsus Verbum et sponsa caro.
   :신랑이신 말씀과 신부인 육신이 (그) 동정녀의 태중 안에 결합되어졌습니다.

   iii. Eum in coelo sedentem manu contrectare non possumus sed fide contingere.
   :하늘에 앉아 계신 그 분을 손으로 만질 수 없으나 믿음을 통하여 만져 볼 수 있습니다.

   iv. Deus lux est: ab illa illuminati et nos lux esse possumus.
   :하느님은 빛이십니다. 그 빛으로 비추임을 받으면 우리 또한 빛이 될 수 있습니다.

   v. Per sanguinem Christi pellendae sunt a nobis tenebrae, ut fiat in nobis lux.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우리 마음 안에 빛이 생겨나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두움을 내몰아야 합니다.

   vi. Superbia exstinguite caritatem, humilitas roborat.
   :교만은 사랑을 파괴하고, 겸손은 사랑을 굳건히 합니다.

   vii. Male vis esse securum: semper tibi displiceas.
   :너무 태만하게 되기를 바라지 말고 언제나 네 자신이 모자르다고 여기십시오.

   viii. Noli sequi falsos iustificatores: solus Christus iustificat.
   :거짓 구원자들을 따르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의롭게 하십니다.

   ix. Sic dilige inimicos tuos, ut in societatem tuam vocentur.
   :여러분의 원수가 당신과의 친교 안에 불리움을 받게 되도록, 그렇게 그들을 사랑하십시오.

   x. Mandatum novum, quia ad hominem novum pertinet.
   :새 계명은 새로운 사람을 향한 것입니다.

   xi. Quisquis odit fratrem, non in lumin, non in Christo ambulat.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빛 속에도 그리스도 안에도 걷고 있지 않습니다.

   xii. Si tenueris caritatem, nec in Chirto scandalum patieris, nec in Ecclesia.
   :애덕을 붙잡으면,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도 추문이나 나쁜 본보기를 겪지 않을 것입니다.

   xiii. Qui oderunt fratres, in montem offenderunt.
   :자기 형제자매들을 미워했던 이들은 그 산(그리스도)에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Tractatus II(1Joannes, 2:12-17)
Christus mortuus est secundum Scripturas et eius Ecclesia per totum orbem diffunditur. Filli, quia nascimur; patres, quia cognoscimus Principium; iuvenes, quia pugnamus, Amor Dei prohibet tres concupiscentias amoris mundi.

:성서의 말씀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지만 그의 교회는 온 세상에 퍼져 나가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 자녀들이 되고, 그리스도를 깨달아 아버지들이 되며, (악과) 싸우는 젊은이들이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세상의 세 가지 욕구를 몰아냅니다.

   i. Quidquid Scripturarum est, Christum sonat, sed si aures inveniat.
   :성서에 속한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를 말해 줍니다만 (마음의)귀를 열고 찾으려 애써야 합니다.

   ii. In passione et resurrectione iuncta est sponso Christo sponsa Ecclesia, diffusa per omnes gentes.
   :수난과 부활을 통하여, 신랑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신부인 교회가 결합되었고, 온 세상에 퍼져 나갑니다.

   iii. Ubi iam omnes linguae sonabant, omnes linguae crediturae ostendebantur.
   :모든 민족들의 언어가 들렸던 그곳에서, 믿음의 모든 언어가 드러날 것입니다.

   iv. Filioli quia dimissis peccatis nascimini in nomine Christi.
   :자녀들이라 불리우는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 받고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v. Patres, quia cognovistis eum qui a principio est.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부르시는 것은, 태초부터 계신 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vi. Iuvenes, quia vicistis malignum.
   :젊은이들이라 부르는 것은, 악을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vii. Quomodo poterimus amare Deum, si amamus mundum.
   :세상을 사랑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viii. Habeamus radicem caritatis.
   :사랑의 근원을 소유하도록 합시다.

   ix. Volvit te amor mundi? tene Christum.
   :세상의 사랑이 소용돌이쳐 여러분을 휩쓸어 갑니까? 그리스도를 붙잡으십시오!

   x. Non te prohibet Deus amare creaturas, sed non diligere ad beatitudinem.
   :하느님께서 피조물들을 사랑하는 것을 금하시지 않았지만, 행복을 위하여 사랑하지는 마십시오.

   xi. Non solum ista sed fabrica et eius habitatores mundus vocantur.
   :"세상"이라함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말씀뿐만 아니라, 그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xii. Desiderium oculorum dicit omnem curiositatem.
   :"눈의 욕구"라는 것은 모든 호기심을 뜻합니다.

   xiv. Et Dominus per ista tentatus est.
   :주님께서도 이것들에 의해서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Tractatus III(1Joannes,  2:18-27)
Nutriti a Christo, ipsius corpori adhaerendo caritate fervida et promissa mundi abiciendo. christus interior magister est et unctio spiritualis.

:열렬한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음으로써 (그리고) 세상의 약속을 거부함으로써 그리스도께 양육되어집니다. 그리스도는 내면의 스승이시며, 영적인 기름 바름입니다.

   i. Lac noster Christus humilis, panis Christus aequalis Patri.
   :겸손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양육할) 젖이시며 아버지와 동일한 그분은 (우리의) 빵이시기도 합니다.

   ii. Ille adtingit de corde mundo Christum, qui intellegit Patri coaequalem.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같은 하느님이심을 깨달은 사람만이, 깨끗한 마음으로, 그분을 만지는 것입니다.

   iii. Ne simus ad proficiendum pigri, quia novissima hora est.
   :노력하는데 게으르지 맙시다. 왜냐하면 이제 마지막 시간이 되었습니다.

   iv. Concordia membrorum non habet antichristum.
   :모든 지체들의 일치에는 반-그리스도라는 것이 없습니다.

   v. Tentatio probat qui antichristi sint.
   :유혹은 반-그리스도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시험합니다.

   vi. Qui in humilem non offendit, non formidabit excelsum.
   :겸손 안에 머무는 사람은 그분의 영광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vii. Donatistae hereditatem non tenent, quia orbi terrarum non communicant.
   :도나투스파는 그리스도의 유산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어느 사람들과도 친교를 맺지 않기 때문입니다.

   viii. Antichristi ore profitentur Christum et moribus dissentiunt a Christo.
   :반-그리스도인들이 입으로 그리스도를 고백하나, 그 행실로써는 그리스도와 일치하지 못합니다.

   ix. Prava voluntate perversi, artificem accusant.
   :그들은 생각이 비둘어져서, 창조주까지 고발합니다.

   x. Unusquisque, si mundi amator est, mutetur: fiat amator Christi.
   :만약 세상을 사랑한다면, 누구나 회개해야 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xi. Si deficiebas in laboribus, promissa mercede fortis esto.
   :만약 여러분이 노력하다가 약해진다면 여러분의 상급으로써 굳건해지십시오.

   xii. Exhorresce quod minatur, ama quod pollicetur Omnipotens, et vilescit omnis mundus.
   :전능하신 이의 경고를 두려워하십시오. 그리고 그분께서 하신 약속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온 세상의 것들이 하찮게 보입니다.

   xiii. Sit unctio Christi in corde tuo, ne sir in solitudine cor sitiens.
   :메마른 여러분의 마음이 황폐해지지 않도록 여러분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의 기름 바름을 간직하십시오.


Tractatus IV(1Joannes,  2:27-3:9)
Vincimus diabolum si, loquente Deo in corde et servata fide, peccatum nostrum non defendamus. Et ex Deo sumus si, christiani etiam in moribus, patienter expectamus Christmus venturum, iusti ex fide, imitatores Dei per Christum.
:만약 마음속에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지켜나가며 우리 죄를 부인하지 않으면, 악마를 이겨낼 것입니다. 만일 행실로서 (참)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리스도의 오심을 인내롭게 기다리면서 말씀을 통해 의롭게 된다면,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본받는 자가 될 것입니다.

i. Illis intus loquitur Deus, qui locum praebent.
:(말씀의) 공간을 마련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내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ii. Tu serva fidem, et sevat Deus pollicitationem.
:믿음을 지키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약속을 지키십니다.

iii. Ne defende peccatum tuum, esto cum Deo: vicisti diabolum.
:자기 죄를 변명하지 않기 위하여, 하느님과 함께 머무르시오: 그러면 악마를 이긴 것입니다.

iv. Multi vocantur christiani, et in rebus non inveniuntur.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립니다만, 실상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v. Si veniet iudicaturus, quomodo venerat iudicandus.
:심판을 받으러 오셨던 것처럼, 그렇게 심판을 하러 오실 것입니다.

vi. Desideremus: implendi sumus.
:열망하십시오: 우리가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vii. Ipsa patientia exercet desiderium.
:인내심 자체는 (우리의) 열망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viii. Modo non relinquamus iustiam quae est ex fide.
:적어도 신앙으로부터 말미암은 의로움만은 버리지 맙시다.

ix. Habemus et nos imaginem dei, sed non sicut Filius.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을 지니고 있지만, 성자처럼은 아닙니다.

x. Eris filius diaboli, imitando.
:악마의 모방을 한다면, 그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xi. Adam et Christus.
:아담과 그리스도

xii. Magna quaestio de peccato.
:죄에 대한 큰 문제.




+Aurlius Augustinus, 요한서간 강해;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원하는 바를 하십시오Dilige, et quod vis fac,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편집부 역, 인천가톨릭대학교.

Posted by kimswork

2009/07/02 15:48 2009/07/0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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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o sum, nihil humani a me alienum puto.

Homo sum, nihil humani a me alienum puto.
나는 인간이다. 인간에 관한 어떤 것도 나에게는 낯설지 않다.

Christianus sum, nihil Christiani a me alienum puto.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에 관한 어떤 것도 나에게는 낯설지 않다.

Posted by kimswork

2009/07/02 15:04 2009/07/0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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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연보

Vita Augustini


                                             354       타가스테에서 태어남

                                             361-5   
타가스테에서 초등교육을 받음

                                             365-9  
마다우라에서 공부를 계속함

                                             370       처음으로 카르타고에 감
                                             370       한 여인과 동거 시작
                                             370       아버지 파트리키우스의 죽음

                                             372       아들 아데오다투스 태어남

                                             373       키케로의『호르텐시우스』를 읽고 '지혜에 대한 사랑'(철학)에 빠짐

                                             375       카르타고에서 타가스테로 돌아와 수사학을 가르침

                                             376       한 친구의 죽음

                                             381      『아름답고 알맞은 것』De pulchro et apto(381/82년)[소실]

                                             383       밀레비스의 파우스투스(마니교 지도자)가 아우구스티누스를 만나러 카르타고에 옴
                                             383       배를 타고 로마에 감

                                             384       밀라노의 수사학 교수로 임명(가을)
                                             384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2세에게 축사를 바침(11월 22일)

                                             385       바우투스에게 축사를 바침(1월 1일)
                                             385       어머니 모니카, 밀라노에 도착(늦봄)

                                             386       신플라톤 철학 서적들을 읽음(6월경)
                                             000       폰티키아누스의 방문을 받고 대화를 나눔
                                             386       카시키아쿰으로 물러감(9월)
                                             386       로마니아누스에게『참된 종교』De vera religione 저술을 약속
                                             386       회심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
                                             386       『아카데미아 학파 반박』Contra Academicos(386년 11월-387년 3월)
                                             386       『행복한 삶』De beata vita(386년 11월-387년 3월)
                                             386       『독백』Soliloquia(386년 11월-387년 3월)
                                             386       『서간집』Epistulae(386-430년)

                                             387       밀라노로 돌아감(3월 초)
                                             387       세례 받음(4월 24일)
                                             387       어머니 모니카의 죽음
                                             387       『영혼 불멸』De immortalitate animae
                                             387       『영혼의 위대함』De animae quantitate(387/88년)
                                             387       『가톨릭 교회의 관습과 마니교도의 관습』De moribus ecclesiae catholicae et de moribus Manichaeorum(387/88년)
                                             387       『음악론』De musica(387/91년)
                                             387       『변증법』De dialetiac
                                             387       『문법론』De grammatica
                                             387       『수사학』De rhetorica
                                             387       『자유의지론』De libero arbitrio 1권(387/88-95년)
                                             387       『산술』De arithemetica(소실)
                                             387       『기하학』De geometrica(소실)
                                             387         『철학』De philosophica(소실)

                                             388       오스티아에서 로마로 감
                                             387       아프리카로 돌아감(7월 또는 8월 말)
                                             387       카르타고를 거쳐 타가스테 고향집에 도착(9월)
                                             387       『마니교 반박 창세기 해설』De Genesi adversus Manichaeos(388/89년)
                                             387       『여든세 가지 다양한 질문』De diversis quaestionibus actoginta tribus(388/96년)

                                             389       아들 아데오다투스 사망
                                             387       『교사론』De magistro

                                             390       형제 네브리디우스의 죽음(?)
                                             387       『참된 종교』De vera religione(390/91년)

                                             391       사제 수품(연초)
                                             387       히포에 수도원을 세움
                                             387       첫 강론sermones(『설교』216)
                                             387       『믿음의 유익』De utilitate credendi(391/92년)
                                             387       『자유의지론』De libero arbitrio 2-3권(391-395년)

                                             392       히포의 소시우스 온천 근처에서 마니교 사제 포르투나투스와 논쟁을 벌임(8월 28-29일)
                                             387       그리스어 성경 주해의 라틴어 번역본을 보내 달라고 히에로니무스에게 편지를 씀
                                             387       도나투스파 주교 막시무스에게 편지를 씀(392/93년)
                                             387       이때부터 419년까지 도나투스 논쟁에 매달림
                                             387       『마니교도 포르투나투스 반박』Acta contra Fortunatum Manichaeum
                                             387       『두 영혼』De duabus animabus(392/93년)
                                             387       『시편 상해』Enarrationes in Psalmos(392-422년). 1-32편(392)

                                             393       옵타투스가 팀가드의 도나투스파 주교로 선출됨
                                             387       히포 교회회의(10월 8일)
                                             387       『신앙과 신정』De fide et symbolo
                                             387       『창세기 문자적 해설 미완성 작품』De genesi ad litteram imperfectus liber(393/94년; 426/27년)
                                             387       『주님의 산상 설교』De sermone Domini in monte(393/95년)
                                             387       『도나투스파 반박 시편』Psalmus contra partem Donati(393/94년)
                                             387       『이단자 도나투스 서간 반박』Contra epistulam Donati haeretici(393/95년)[소실]

                                             394       알리피우스가 놀라의 파울리누스에게 아우구스티누스의 책 다섯 권을 보냄
                                             387       『마니 제자 아디만투스 반박』Contra Adimantum Manichaei discipulum
                                             387       『로마서 명제 해설』Expositio quarundam propositionum ex epistula apostoli ad Romanos(394/95년)
                                             387       『로마서 미완성 해설』Epistulae ad Romanos inchoata expositio(394/95년)
                                             387       『갈라티아서 해설』Expositio epistulae ad Galatas(394/95년)
                                             387       『거짓말』De mendacio(394/95년)

                                             395       히포의 주교 발레리우스의 보좌주교가 됨(395년 5월-397년 8월)
                                             387       도나투스 논쟁에 전념(395-411년)

                                             396       『그리스도교 교양』De doctrina christiana(396-426/27년)
                                             387       『그리스도인의 투쟁』De agone christiano
                                             387       『심플리키아누스에게』Ad Simplicianum(396/29년)

                                             397       아우구스티누스가 심하게 앓음
                                             387       카르타고에 머물며 40여 회 강론(5-9월)
                                             387       제2차 카르타고 교회회의 참석(6월 26일)
                                             387       제3차 카르타고 교회회의 참석(월 13-28일)
                                             387       누미디아의 투부르시쿰에서 도나투스파 포르투니우스와 논쟁을 벌임
                                             387       『마니교 기조 서간 반박』Contra epistulam Manichaei quam vocant fundamenti
                                             387       『마니교도 파우스투스 반박』Contra Faustum Manichaeum(397/99년)
                                             387       『수도 규칙』Regula(397/99년)
                                             387       『고백록』Confessiones(397/401년)

                                             398       『그리스도교 규율』De disciplina christiana
                                             387       『힐라리스 반박』Contra Hilarem(소실)

                                             399       제4차 카르타고 교회회의 참석(4월 2일)
                                             387       『신의 본성』De natura boni
                                             387       『마니교도 세쿤디누스 반박』Contra Secundinum Manichaeum
                                             387       『욥기 주해』Adnotationes in Iob
                                             387       『입문자 교리교육』De catechizandis rudibus
                                             387       『삼위일체론』De Trinitate(399-422/26년경)
                                             387       『복음사가들의 일치』De consensu evangelistarum(399/400년)
                                             387       『복음서에 관한 질문』Quaestiones Evageliorum(399/400년)
                                             387       『마태오 복음의 열여섯 질문』Quaestiones XVI in Mattheum(399/400년)

                                             400       키르타 방문
                                             387       『보이지 않는 사물에 관한 믿음』De fide rerum invisibilium
                                             387       『파르메니아누스 서간 반박』Contra epistulam Parmeniani
                                             387       『세례론』De baptismo(400/01년)
                                             387       『페틸리아누스 서간 반박』Contra litteras Petiliani(400/03년)
                                             387       『야누아리우스의 질문』Ad inquisitiones Ianuarii(=『편지』54-55)

                                             401       제5차 카르타고 교회회의(6월 15일)
                                             387       막시밀리아누스파 열교에 빠진 사제를 조사하러 아수라스와 무스티에 감
                                             387       제6차 카르타고 교회회의(9월 13일)
                                             387       칼라마의 도나투스파 주교 크리스피누스가 칼라마의 가톨릭 주교 포시디우스에 맞서 폭행을 주도함
                                             387       『혼인의 선익』De bono coniugali
                                             387       『수도승의 노동』De opere monachorum
                                             387       『거룩한 동정』De sancta virginitate
                                             387       『창세기 문자적 해설』De Genesi ad litteram(401/05년)

                                             402       제7차 교회회의(밀레비스, 8월 7일)
                                             387       『가톨릭 형제들에게』Ad catholicos fratres(402/05년)

                                             403       제8차 카르타고 교회회의(8월 25일)
                                             387       도나투스파들이 포시디우스를 해함

                                             404       제9차 카르타고 교회회의(6월 26일)
                                             387       마니교도 펠릭스와 공개 토론(12월 7일 수요일-12일 월요일)
                                             387       『마니교도 펠릭스 반박』Contra Felicem Manichaeum

                                             405       제10차 카르타고 교회회의 참석(8월 23일)
                                             387       『도나투스파 문법학자 크레스코니우스 반박』Contra Cresconium grammaticum partis Donati(405/06년)
                                             387       『익명의 도나투스파 반박』Contra nescio quem Donatistam(소실)
                                             387       『도나투스파 반박 증명과 증언』Probationes et testimonia contra Donatistas(소실)

                                             406       『악마의 점술』De divinatione daemonum
                                             387       『막시미아누스파에 관한 도나투스파의 경고』Admonitio Donatistarum de Maximianistis(소실)
                                             387       『요한 서간 강해』In epistulam Ioannis ad Parthos tractatus(406/07년)

                                             407       제11차 교회회의 참석(투부르시쿰, 6월 말)
                                             387       『시편 상해』
                                             387       『요한 복음 강해』

                                             408       제12차 카르타고 교회회의 참석(6월 16일)
                                             408       제13차 카르타고 교회회의 참석(10월 13일)
                                             408       『단식의 유익』
                                             408       『이교인 반박 여섯 질문』

                                             409       제14차 카르타고 교회회의 참석(6월 15일)
                                             387       도나투스파 주교 마크로비우스가 히포에 돌아옴

                                             410        제15차 카르타고 교회회의 참석(6월 14일)
                                             387       펠라기우스가 히포에 들름
                                             387       카르타고 토론회 소집령(10월 14일)
                                             387       마르켈리누스 방백이 토론회에 참석하러 옴
                                             387       건강이 악화되어 히포 근처의 마을에서 겨울을 지냄
                                             387       『페틸리아누스 반박 하나인 세례』

                                             411        카르타고에서 도나투스파에 맞서 강론함(1월-3월), 이 강론은 키르타와 카르타고에서도 이어짐(4월-6월)
                                             387       카르타고 교회회의를 주도적으로 준비
                                             387       마르켈리누스 방백이 참석한 가운데 토론회 개막(1월 1일)
                                             387       카르타고 교회회의(6월 1일, 3일, 8일)
                                             387       마르켈리누스가 도나투스파를 단죄하는 결정문을 공포(6월 9일)
                                             387       피니아누스가 히포에 나타남
                                             387       마르켈리누스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편지를 보냄. 마르켈리누스는 펠라기우스가 카르타고에서 이설을 퍼뜨리고 있으며, 켈레스티누스가 법정에서 단죄받았다고 전함
                                             387       『도나투스파 반박 토론 초록』
                                             387       『도나투스파 반박』
                                             387       『도나투스 열교 반박』
                                             387       『죄벌과 용서 그리고 유아세례』
                                             387       『로마 시 함락』

                                             412        반 도나투스파 법령 반포(1월 30일)
                                             387       제르타 교회회의 참석자들이 도나투스파에게 회의 결과를 편지로 전함
                                             387       키르타 교회회의 참석(6월 14일)
                                             387       카르타고에서 강론(9-12월)
                                             387       『영과 문자』
                                             387       『신약성경의 은총론』
                                             387       『막시미아누스파에 관한 도나투스파 반박』

                                             413        카르타고 방문(1월 중순)
                                             387        마르켈리누스를 구제하기 위해 카르타고를 다시 방문(6월 말, 9월)
                                             387       『하느님 관상』
                                             387       『신앙과 실천』
                                             387       『교회 일치』
                                             387       『신국론』

                                             414        히포에서 주교회의 개최
                                             387       『과부 신분의 선익』
                                             387       『요한 복음 강해』

                                             415       『프리스킬리아누스파 반박』
                                             387       『본성과 은총』
                                             387       『영혼의 기원』
                                             387       『도나투스파 주교 에메리투스에게 보낸 토론 후기』
                                             387       『야고보서의 명제』
                                             387       『인간 의로움의 완성』
                                             387       『신국론』

                                             416        펠라기우스파에 관하여 로마, 아프리카 교회와 서신 교환
                                             387       오로시우스의『역사서』Historiae 받음
                                             387       카르타고에서 강론(9월 중순)
                                             387       반 펠라기우스 교회회의 참석
                                             387       『시편 상해』
                                             387       『도나투스파 계도』
                                             387       『하느님의 현존』
                                             387       『인내론』
                                             387       『신국론』

                                             418        제16차 카르타고 교회회의에서 가톨릭 교의를 9개 항목으로 요약(1월)
                                             387       피니아누스가 예루살렘에서 펠라기우스를 보았다는 편지를 받음
                                             387       피니아누스에게『그리스도의 은총과 원죄』De gratia Chisti et de peccato originali를 보냄
                                             387        조시무스 교황의 교서에 따라 알리피우스, 포시디우스와 함께 마우리타니아의 카이사리아에 감
                                             387       도나투스파 주교 에메리투스를 만남
                                             387       에클라누스의 율리아누스와 논쟁(418-430년)
                                             387       『도나투스파 주교 에메리투스와의 논쟁』
                                             387       『그리스도의 은총과 원죄』
                                             387       『절제론』
                                             387       『카이사리아 교회 신자들을 향한 설교』
                                             387       『신국론』

                                             419       에클라누스의 율리아누스의 첫 작품 탄생
                                             387       제17차 카르타고 교회회의 참석(5월 25일)
                                             387       마우리타니아의 카이사리아 방문(9월)
                                             387       『요한 복음 강해』
                                             387       『아리우스파 설교 반박』
                                             387       『구약 칠경 강해』
                                             387       『구약 칠경에 관한 질문』
                                             387       『구약성경에 관한 여덟 질문』
                                             387       『혼인과 정욕』
                                             387       『영혼과 그 기원』
                                             387       『부정한 혼인』
                                             387       『율법과 예언서 반대자 반박』
                                             387       『도나투스파 주교 가우덴티우스 반박』

                                             420       보니파티우스를 만남
                                             387       『펠라기우스파 두 서간 반박』
                                             387       『율리아누스 반박』
                                             387       『믿음 희망 사랑의 길잡이』

                                             422       『죽은 이를 위한 배려』

                                             424       『돌키티우스의 여덟 질문』

                                             425       『예비신자를 위한 신경 해설』
                                             387       『신국론』

                                             426        후계자를 뽑기 위해 밀레비스를 방문
                                             387        에라클리우스 신부를 자신의 후계자라고 신자들에게 소개
                                             387       『은총과 자유의지』
                                             387       『훈계와 은총』
                                             387       『재론고』

                                             427       『아리우스파 주교 막시미누스와의 토론』
                                             387       『아리우스파 막시미누스 반박』
                                             387       『거울』

                                             428        프로스페르와 힐라리우스로부터 편지를 받음
                                             387       『성도들의 예정』
                                             387       『항구함의 은사』
                                             387       『유대인 반박』
                                             387       『이단론』

                                             429       『율리아누스 반박 미완성 작품』

                                             430        죽어서 묻히다(8월 28일 토요일)


+Possidius, Vita Augustini, 분도출판사, pp.159-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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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1 16:32 2009/07/0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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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인간 속에서 인간을 인식할 수 없다.

+Ludwig Wittgenstein, 문화와 가치Vermischte Bemerkungen, 이영철 역, 책세상, p.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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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1 15:23 2009/07/0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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