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팡세Pensees 읽기 2008.7.2
A. 머리말
2-(274) 우리의 모든 이성적 사고는 결국 감정에 굴복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그런데 환상은 감정과 유사하면서도 반대되는 것이어서 사람들은 상반되는 이 둘을 구별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 감정을 환상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자기의 환상을 감정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기준이 있어야만 한다. 이성이 기준으로 자처하지만 이성은 어느 방향으로나 휘어진다. 그래서 기준이 없다. : 이성에 대한 불신
6-(10) 일반적으로 사람은 타인의 머릿속에서 생겨난 이유보다 자신이 발견한 이유에 의해 더 잘 납득한다. :
7-(252) ...왜냐하면 자신을 잘못 알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정신이면서 또 그만큼 자동 기계다. 그러므로 설득에 사용되는 수단은 증명만이 아니다. 증명된 사물이란 얼마나 적은가! 증명은 오직 이성만을 설득한다. 습관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신뢰받는 증명을 이룬다. 습관은 자동 기계를 기울게 하고 자동 기계는 무의식중에 정신을 이끌어간다. 내일 해가 뜨고 또 우리는 죽을 것이라고 그 누가 증명하였는가. 그런데 이보다 더 확실히 믿는 것이 어디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를 그렇게 믿게 하는 것은 습관이다. 수많은 기독교도를 만드는 것도 습관이고 터키인, 이교도, 직업, 군인 등을 만드는 것도 습관이다. 결국, 정신이 일단 어디에 진리가 있는지를 본 다음에는 습관에 의지함으로써 시시각각 우리에게 빠져나가려는 이 확신 속에 흠뻑 빠져들고 물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증명을 항상 머릿속에 간직한다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더 쉬운 믿음, 즉 습관의 믿음을 획득해야 한다. 습관은 억지도 기교도 없이 사물을 믿게 하고 우리의 모든 기능을 이 믿음으로 기울게 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그 속에 빠져들어 간다. 오직 확신의 힘만으로 믿을 때 자동 기계가 그 반대의 것을 믿게 되면 확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의 두 부분을 믿게 해야 한다. 즉, 일생에 단 한번 보기만 하면 되는 이유에 의해 정신을, 그리고 습관에 의해 자동 기계를 믿게 하되 이것이 반대의 것으로 기울지 않도록 해야 한다. Inclina cor meum Deus. 이성의 움직임은 완만하고 수많은 관점에서, 그리고 수많은 원리 위에서 이루어진다. 이 원리들은 항상 눈앞에 현존해야 하는데 이성은 이 모든 것을 간직할 수 없으므로 으레 몽롱해지거나 갈팡질팡한다. 감정은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감정은 순식간에 발동하고 늘 움직일 태세가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은 감정 안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비틀거릴 것이다. : 이성에 대한 극렬한 반대를 드러냄. 정신에 의해 획득된 진리를 파악하고 그것을 습관화하기 위한 과정에서 작용하는 이성의 기능은 완전히 배제하는 한편 즉각적 움직임을 드러내는 감정 안에 믿음을 터해야 함.
B. 서론
10-(197) 관심을 가져야 할 일들을 무시해 버릴 만큼 무감각하다는 것, 우리와 가장 관련이 깊은 문제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 : 믿음을 상실하거나 혹은 믿음을 전혀 소유하지 않았거나.
11-(194) P10.1 그러므로 이 회의(懷疑) 안에 있는 것은 정녕 커다란 불행이다. 그러나 이 회의 안에 있을 때 추구하는 것은 적어도 필수적인 의무다. 이렇듯 회의하면서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몹시 불행하고 또 몹시 불의하다. : 이성으로써 종교를 부정하고 신에게서 인간의 궁극적 목적인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의 불행.
11-(194) P20.3 만약 마음속 깊은 곳에 더 많은 빛을 갖지 않은 것 때문에 괴로워한다면 이것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공언하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수치는 단지 빛을 전혀 갖지 않은 데 있다. ......기독교도가 될 수 엇다면 최소한 성실한 인간이라도 되라. 그리고 이치에 합당하다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다음 두 종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라. 신을 알기에 마음을 다하여 신을 공경하는 사람들과, 신을 모르기에 마음을 다하여 신을 찾는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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